수학강사 삽자루 사망 소식, 그리고 기억 조각들
1964년생으로 향년 60세, 한국인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학생들의 70~80%는 메가스터디의 신승범 강사의 인강을 들었다.
수학을 아주 잘하지는 못하던 나도 상위권 전용이라는 신승범 인강을 들으며 고쟁이 같은 교재를 (풀지도 않으면서) 사 모았고, 학교에 선생님이 왔을 때 버선발로 달려 나가다 넘어지면서까지 사인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쨌든 70~80%라는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자랑하던 신승범 인강을 듣는 친구를 제외하고는 삽자루, 남효종과 같은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 반에서는 대표적으로 효정이가 삽자루 인강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삽자루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는 않았지만 당시 신인이던 권규호 선생님의 국어 인강을 들었고, 그가 삽자루 선생님의 밑에 있었기에 삽자루 선생님에 대한 일화를 많이 들으며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 진학 후에는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는 친구와 유럽여행을 준비하였다. 그러다 알게된 것이 삽자루 선생님이 운영하던 유럽여행사 삽자루투어였다. 유럽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삽자루투어에서 진행하는 설명회에 갔었다. 설명회가 진행되는 남영역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삽자루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붉은색이었는지 푸른색이었는지 하와이안 비슷한 셔츠를 입은 선생님이 뒤늦게 올라타셨고, 인사를 나누면서도 미디어에서만 보던 스타를 만났다는 생각에 친구와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선생님은 작전명 밝히리 등으로 활동하며 댓글알바 사건을 파헤치셨다. 영상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았기에, 뇌출혈 이후 투병중이라는 소식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20대 초반의 애송이였던 나는 사법시험 끝물에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내가 마주한 것은 나를 둘러싼 30대 이상의 장수생들 사이에서 민법도 모르면서 형법부터 듣고 있는 어리버리한 나 자신이었다. 민법도 건너뛴 상태로 아무것도 몰랐지만 당시 한림법학원 1타 강사였던 이용배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 재미있었다. 선생님은 조곤조곤 말씀하시면서도 한 번씩 우리를 빵빵 터지게 해 주셨다. 선생님의 형법 강의는 이해가 쏙쏙 되었다. 수업 시간에 아내분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실 때면 정말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되었고 만약 소송에 휘말린다면 말하라고, 아주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하실 때는 그렇게 든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법이 끝나고 헌법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신림동에서 아주 짧은 고시생 생활을 마쳤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선생님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작년 언젠가 문득 이용배 선생님이 잘 계신가 궁금해졌고,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검색한 나는 선생님이 사망하셨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고야 말았다. 내가 사시를 그만둔 후에도, 사시가 폐지된 후에도 로스쿨용 형법 교재를 내고 강의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분인데 돌아가신 지 1년이 넘은 시점에 알게 되다니, 선생님의 강의를 잠깐 들었을 뿐이지만 눈물이 났다.
삽자루 선생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좋은 일 하시던 분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진 것은 물론이고, 허망함까지 느껴진다. 세월이 어찌나 빠른 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익숙하고 친숙한 두 분의 선생님이 아주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인생이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덧없고 허무한 가운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짧지만 함께했던 기억을 담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